우정, 그 쓸쓸하고 피곤한 허상 – 마광수 교수의 단상
- "우정에 속지 마라 – 마광수 교수의 날카로운 통찰"
- "진짜 우정은 없는가? 질투와 공허에 대하여"
- "동창과 친구, 우리는 왜 우정에 피로해지는가"
우정, 허울 좋은 이름의 피곤함
마광수 교수는 우정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지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학교 동창 모임처럼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에도 '우정'을 포장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진심과는 거리가 먼 행동과 말들이 오가곤 합니다. 실제로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관계임에도 우리는 '우정'이라는 이름에 스스로를 속여 피곤함을 감수하곤 하지요.
우정의 실체와 그 씁쓸함
‘진짜 우정’은 같은 뜻과 행동을 함께하는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대부분은 사교상의 만남(즉, 술친구나 심심풀이 친구), 또는 직업과 사업 상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교수는 이러한 관계를 차라리 우정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먹고 살거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이런 '가짜 우정'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그 뒤에는 언제나 씁쓸함이 남게 마련입니다.
‘참된 우정’은 있는가?
마광수 교수는 심지어 첫 번째 진짜 우정마저 현실에선 흔하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친구 사이엔 언제나 질투와 열등감, 우월감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어 결국 공허해지고 맙니다. 우정이란 결국 정신적인 결속이기에, 오히려 관계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배신의 상처와 질투의 실체
개인적인 일화에서는, 학창 시절 가장 아끼던 후배로, 결혼식 사회자까지 맡았던 동료에게 심각한 배신을 당했던 경험을 전합니다. 그 후배가 학과장이 되자 우리 사회의 ‘자리 나눠먹기’ 속 작동하는 집단심리에 얽혀, 마 교수의 교수를 그만두게 만들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교수는 극심한 배신감과 트라우마, 우울증, 삶의 위기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를 딱 하나, 질투에서 찾았습니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질투와 경쟁, 그리고 공허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한줄 정리
“정말로 참된 우정은 없다. 우정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관계는 질투와 공허함, 피곤함을 동반한다.”
이 글은 ‘우정’에 대한 환상보다는, 관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투와 공허, 그리고 인간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직시하게 해줍니다. 마광수 교수의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진짜 우정’이란 과연 가능한지, 아니면 사회적 가면일 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